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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트라우마와 외계인에 의한 납치 : 제5도살장 : 크래시 코스 문학 (PTSD and Alien Abduction - Slaughterhouse-Five Part 2: Crash Course Literature 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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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소개 

커트 보네깃의 소설인 제5도살장에 대한 강의입니다. 전쟁 후 트라우마에 대해, 그리고 외계인에 의한 납치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나타내어 주는지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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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존 그린이고, 여러분은 지금 크래시 코스 문학 시리즈를 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제5도살장>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 보려고 합니다. <제5도살장>은 '반전 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해 보게 합니다. 어떤 소설이 전쟁에 반대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소설들이 어떤 결단을 내리는 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일까요? 정말 그들이 실제 세상을 바꿀 수 있나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해볼 것 중의 하나입니다. 커트 보네깃처럼, 우리의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연합군이 세계 2차 대전에 드레즈덴을 폭발했던 당시 그가 목격했던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또한 그 폭력에 대해 진술하려는 욕구와, 트라우마가 되는 그 당시의 기억을 억눌러야 할 필요성이 대립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자유 의지에 대해, 그리고 외계인의 납치에 대해 탐구해 볼 것입니다. 미스터 그린 씨, 미스터 그린 씨, 에일리언이요? 프로브요? 과거의 저, 아이고, 만약에 당신이 이런 유머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사우스 파크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사우스 파크는 2년 안에 나올 거에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해부학적인 유머에 대해서 말해볼 것입니다. 당신은 분명 행복해 할 거에요. 그리하여 보네깃은 도살장 5년 1969년에 출판하였습니다. 전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용어가 생기지 않았을 때 이 소설이 쓰여졌지요. 하지만 빌리 필그림은 분명히 이것의 증상을 겪습니다. 그러니까, 전쟁 중의 그의 경험은 정말로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이죠. 그는 발지 대전투에서 적군에 휩쓸려서 행방불명이 되고, 그는 독일에 잡혀가기도 합니다. 그는 포로수용소로 가는 도중에 동료 군인이 괴저병으로 인하여 죽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다른 포도를과 함께 며칠동안 기차에 무리하게 갇혀 있기도 합니다. 그는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고, 폭격 후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많은 시체를들 보기도 하고 말입니다. 또, 그가 찻주전자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그 동료 포로가 사형당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지금 일어나는 것 처럼 그가 트라우마를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환각으로 고통받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것들과 뚫어뻥 모양의 외계인들과는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이것을 보는 영국인 같은 시각이 있어요. 빌리 필그림의 내면에는, 쌓여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걸 오물들이라고 불러 볼게요. 뚫어뻥은 변기의 오물을 뚫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트랄파마도리안 외계인이 나오는 환상은 필그림이 전쟁에서의 경험에서 온 수치스러움과 공포감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독일인들은 그가 포로 수용소로 도착하였을 때 옷을 벗게 합니다. 그런데, 트랄파마도리안도 똑같은 짓을 하죠. 독일인들은 포로 중 한명을 때리고서는 때린 이유도 말하지 않습니다. 트랄파마도리안들도 그들이 필그림을 유괴한 이유를 말하지 않죠. 독일인들은 필그림을 도살장에 가둡니다. 프랄파마도리안들은 그를 동물원에 가두지요. 필그림의 과거와 환상의 세계는 명백하게 평행선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환상의 세계에서는, 필그림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일들을 재진술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예를 들어서, 필그림은 그가 포로였을 때 무력감을 느꼈지요. 그는 발가벗겨졌고, 여자의 코트를 강제로 입어야 했으며, 놀림당했습니다. 하지만 외계인들에게 잡히는 필그림의 환상에서, 그는 "그의 몸을 처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라고 진술합니다. 또한 그는 트랄파마도리안들이 그를 "아주 멋진 표본"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합니다. 그는 그 자신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굉장한 왱"이라고요. 그의 환상 속에서, 20살의 포르노 스타가 그를 갈망하게 되는데요, 그는 정력이 넘쳐서, 아이를 한번에 갖습니다. 포로로 생활하는 동안 가장 좋은 걸 경험했네요! 이렇게 바뀌는 것은 주인공이 미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도 혹자는 말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것이 회복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필요한 단계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필그림의 환상에는 더 깊고, 철학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트랄파마도리안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말입니다. 트랄파마도리안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을 한번에 봅니다. 한 외계인이 이 세 개의 순간은 한꺼번에 존재한다고 말한 것 처럼요. 그리고 이러한 말들은 사람이 "로키 산맥이 뻗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라고 하는 것 만큼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개인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들을 바꿀 수 없어서, 트랄파마도리안들의 시각으로 본 시간과 공간은 자유 의지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맞나요? 많은 고전 그리스 희곡들은 개개인들이 그들의 운명에 의해 통치된다는 개념을 지지합니다. 우리의 오래된 친구 오이디푸스를 기억하시죠? 오라클로부터, 그가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애써도,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과 자게 될 거라는 사실을 들었던 것 처럼요. 그는 결국에 그러게 됩니다. 또한 그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 역겹네요. 자, 우리는 대체 <제5도살장>을 이야기하면서 왜 자유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까요? Thought Bubble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첫 번째로, 자유 의지의 개념은 도덕적인 책임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장 넓은 개념의 용어처럼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은 죄가 아무리 악랄하다고 해도, 당신은 선택권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견해이죠. 제5도살장에서, 필그림은 문제가 있는 인생의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한 결혼 상대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빌리는 못생긴 발렌시아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병이 나타내는 증상 중 하나였다. 그는 그가 미쳐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청혼하였을 때...."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의 선택은 그렇게 부도덕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전쟁시에 채플린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였죠. (그는, 그 역할을 수행할 때 적군이나 그의 친구들에게 해를 입힐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검안사로 근무하는데요, (검안사는 다른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이죠.) 동시에 그는 가족을 부양하죠 (그것은 어떤 것을 제공하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그러면, 필그림은 왜 도덕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요? 음, 그것은 명백히 빌리가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드레즈덴 폭격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죠. 또한 폭격을 날린 사람들과 같은 편에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전쟁 후에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그의 죄책감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그 당시 세상의 시선을 차용하게 되면서, 빌리는 그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자책할 수 없게 됩니다. 아니면, 대규모의 살인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또는 전쟁이 끝난 후에 재정적으로 이득을 보았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우리는 보네깃의 소설에 반영된 자유 의지와 도덕적인 책임의 관계에 대한 이 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보네깃은 제5도살장의 구조를 짤 때 독특한 구조를 사용했는데요. 2개의 챕터는 작가의 목소리로, 그리고 때때로 그는 자신을 주요한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로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작가는 전쟁 포로로 등장하기도 하며, 드레즈덴에서 시체를 치우는 사람으로 작품 속에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가가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은 빌리 필그림이볼 수 없는 현실의 측면, 즉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을 진술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보네깃은 주로 필그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술합니다. 예를 들어서, 진술은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과 소설을 융합하며, 그리고 그 소설은 역사적인 사건을 에일리언에 의해 납치당하는 환상과 결합시키지요. Thought Bubble, 고마워요. 그래서, 보네깃이 이러한 일들을 필그림이 그것들을 경험하는 순서대로 섞기도 하지만, 서술은 시간에 관계없이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하기도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순서도 뒤죽박죽죽이죠. <제5도살장>은 프릴파마도리안이 나오는 소설입니다. 그렇죠? 필그림은 외계인을 이용하여 트랄파마도리안 소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상징하는 것들의 각각은 간단하고, 긴급한 메세지들이다. 상황을 묘사하는 것, 장면을 묘사하는 것 말이다. 우리 트라파마도리안은 그것들을 한 번에 읽는다. 하나 뒤에 하나가 일어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메세지들 간에 특정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작가는 그것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선택했지만 말이다. 그것을 한번에 보면, 그 사건들은 아름답고 놀라운 인생의 이미지를 창조하게 된다.” 라고 합니다. 시작도, 중간도, 끝남도, 서스펜스도, 도덕성도, 원인도, 결과도 없지요. 우리가 책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많은 멋진 순간들의 깊이입니다. 명백히, 1969년으로 돌아가 보면, 보네깃은 트위터의 피드를 스크롤 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트랄파마도리안에 대한 그의 환상과 반응에 기반한 읽기 경험이 많은 우리의 현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밖에 없었죠. <제5도살장>은요, 오, 편지를 열어볼 시간이군요. 오, 제 트위터 계정인데요? 트위터야, 너는 정말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보이는 곳이야. 하지만 나는 말할 것이 하나 있어. 너는 트랄파마도리안 문학에서 가장 질이 좋지 않단다. 내가 위트맨을 트위터에서 팔로우 한다면, 아, 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안다구요. 그러니까, 때때로 제 트위터 피드는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가 될 수 있단 말이에요. “베버리 힐즈의 부자 어린이들의 새 시즌을 놓치지 마” 이런 것도 될 수 있겠죠. 저는 그 쇼를 방금 고안해 냈는데요. 쇼를 만들기위해 참 좋은 아이디어 아니었나요? 오, 세상에, 당신 지금 절 놀리시는 건가요? 진짜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저를 시간 개념으로부터 분리할려고 하는 시도를 사랑합니다. 또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을 사랑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아름답고, 놀랍고, 깊은 인생의 이미지를 저에게 주지 않는 것 같네요. 당신이 주의산만함을 주는 것 만큼 말입니다. 행운을 빌어요, 존 그린 올림. 어쨌든, <제5도살장>은 트랄파마도리안 문학과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똑같습니다. 1) 그것이 간단하고, 긴급한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요. 2) 장면들이 순서와 상관없이 제시되어 있다는 측면에서요. (그리고 그것은 그 사건들이 한 번에 일어나는 것 처럼 만들지요) 그리고 3) 보네깃이 각각의 장면들을 조심스럽게 선택했다는 측면에서도요. 하지만, 이것은 단지 외게인 문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깊은 면을 나타내주는 것이죠. 이 소설은 분명히 시작, 중간, 그리고 엔딩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보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이것들을 모두 만들지만, 보통의 방법으로 만들지 않을 뿐이지요. 필리 필그림은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잘못 되는 것 같기는 해도, 그것은 잃음에 대한 사람의 깊은 반응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리가 그러한 방법으로 느껴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고한 시간으로 누가 돌아가기를 원할까요? <제5도살장>의 방식은, 빌당스로만에 반대합니다. 이 소설은 그들이 교육받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요. 빌리 필그림이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어떤 로마 사람이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이다” 말하는 것처럼 된 것이죠. <제5도살장>의 가장 유명한 측면 중의 하나는 보네깃이 트랄파마도리안의 격언인 “그것 또한 그렇게 지나가지” 를 반복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죽음을 언급할 때 마다요. 그것은 잔인하고, 급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감각한 방법으로 죽음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사실에 이 표현의 힘이 있지요. 그러니까, 전쟁 시기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파괴된 빌리 필그림의 마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라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요? 바로 “그것 또한 그렇게 지나가는 거지”라고 반응하는 거죠. 하지만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기로 인해 비롯된 이러한 일들을, 독자들이 그냥 인간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원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장식이 없고 감정이 없어습니다. 보네깃은 독자들이 수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충격을 받길 원했죠. 하지만 저는 <제5도살장>이 어떠한 측면에서는 ‘트랄파마도리안’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이 “우리의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한꺼번에 보이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의 깊이이다” 라고 하였듯 말입니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데요,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에만 경외감을 느기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것들에도 경외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놀라운 것과 끔찍한 것들 둘 다에 경외감을 느기죠. 이것이 이상하고, 놀랍고, 잘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에, 보네깃은 대량 살상과 고문, 그리고 그냥 죽음을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현대에 인간이 직면한 위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량 폭력에 대한 우리의 경향의 위험성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그런 것들로부터 눈을 떼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각각은 주의를 다른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함으로써, 그들은 전략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기도 하죠. 제 말의 뜻은, 솔직히,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매일 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위험은 보네깃이 노출시키고자 하는, 깊이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적어도 그러한 측면에서, 저는 소설이 전쟁에 반대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시다. 크래시 코스는 이렇게 좋은 분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크래시코스는 Subbable에서 당신이 후원해 주셨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지요. Subbable을 통해, 당신이 자막을 넣어 주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크래시코스를 직접적으로 후원해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크래시 코스를 영원히 무료로 제공해 줄 수 있게 도와주지요. 당신이 크래시 코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당신에게는 이런 방법들이 있습니다. 보아 주셔서 감사하고, 저의 고향에서 자주 하는 말을 해 볼게요. 멋지게 사는 거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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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자 John Green
제공자 crashcourse
원본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HyKhIiGKq5M&t=365s
등록자 쪽지
태그 제5도살장
저작권

강의 댓글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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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 어떤 현상을 겪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건이 뒤죽박죽 섞여서 서술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의 소설을 좋아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2017/01/24 22: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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